날씨 좋은 주말이니까 산에 한번 가볼까?
우리의 첫 목적지는 오대산! 월정사전나무숲길과 상원사 동종이 궁금했다.
(한국사의 여파라고 해야할까.. )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영주 부석사를 가자는 ㅇ님의 제안으로 급히 차를 돌려 목적지 정정!
부석사는 아빠랑도 산책 삼아 한번 다녀갔던 곳이었다.
그땐 가을이라 걸어 내려가며 길에 떨어져 있던 은행을 끝없이 주우면서 내려갔던...
은행향기 풀풀 나는 추억이 떠오른다.
영주 부석사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관람료: 무료
-참고: http://www.pusoksa.org/
- 주의사항: 애완동물 출입금지
[부석사 (浮石寺)]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로 불리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이라 한 데서 연유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홍교사라 불리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부석사는 무량수전 등이 크게 중창되었으나 공민왕 7년(1358) 외적의 병화를 당하였고, 그 후로 우왕 2년(1376)에 무량수전이 재건되었고, 우왕 3년(1377)에는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제1636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대석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고려목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길을 따라 각종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고 있고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부석사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부석사 당간지주]
절에 법회나 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기둥의 높이는 428cm이며, 마주 보는 안쪽 측면과 바깥쪽 측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앞면과 뒷면에는 3 존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 윗부분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모양의 홈이 파여있다. 기둥 사이에 놓인 정사각형의 받침들 위에는 연꽃을 조각하고 중앙에는 직경 30cm의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칠 수 있게 하였다.
대체로 가늘고 길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255호)
부석사를 가기 전 당간지주가 나온다. 이때 잠깐 숨도 고를 겸 멈췄다.
오대산 안 가길 잘했다 싶었다.
오대산이 웬 말이냐 부석사도 힘든걸?ㅋㅋㅋ 운동 좀 해야겠다 다시깅
말 수가 줄어들면서 땀이 한 방울 맺힐 때쯤 반가운 천왕문이 나타났다. 사천왕은 볼 때마다 무섭..ㅠㅠ
해가 비췄지만 나무숲이 그늘을 만들어줘서 시원했다.
매표소에서 부석사 까지 15~20분 정도 걸린듯하다. (내 걸음으로..ㅋㅋ)
천왕문을 지나 무량수전으로 가려면 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계단 하나하나의 크기가 꽤 크다. 가파르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들은 올라가기 힘들어하셨다.
"올라가는 건 어떻게 올라가도 내려올 때 어떡하나.." 걱정하시며...
(내려올 땐 관음전 쪽으로 내려오시면 계단 없는 내르막길이에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아시지 않을까 괜히 또 다시깅오지랖 발동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꾹 참고 계단을 올랐다. 사실 나도 숨이 차서 말 못 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범종루는 계단에서 바라보는 이 부분이 정면이 아니고 측면이라고 한다.
이 정보는 해설사님과 함께 동행하는 단체 관람객들도 있었고, 아저씨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 습득할 수 있었다.
해설사님은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문화관광해설사 관련 문의: 문화해설사 안내소 054-639-5849)
(한국사 여파.....ㅋㅋㅋ반가운 단어가 나왔다. 경복궁재건/당백전)
경복궁을 재건했던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전국의 철을 모았는데 이때 부석사에 있던 범종도 함께 녹여 당백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ㅇ님은 절 물은 먹어줘야 한다고^^... 한잔 거~ 하게 마시심ㅋㅋ
극락세계로 가는 사찰의 마지막 문 안양문이다.
이곳을 지나면 드디어 부석사의 상징 "무량수전"이 나타난다.
안양문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몸을 낮춰서 올라가야 하도록 낮게 만들어져 있다.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도 함께 봐주시라, 비례의 아름다움을 제일 잘 나타낸 통일신라 최고 석등이라고 하지 않는가.
[부석사 무량수전]
Muryangsujeon Hall of Buseoksa Temple, Yeongju
무량수전은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극락진 또는 미타전이라고도 부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부석사의 중심 법당으로 무량수 있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무량수전은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때에 지었다고 추정되지만, 그것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고려 현종 7년(1016) 고쳐지었으며 공민양 7년(1358)에 외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서 우양 2년(1376)에 다시 짓고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수리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해체하여 수리하였다.
무량수전은 앞면 5간, 옆면 3간 크기의 목조건들이다. 지봉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각지붕으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기둥은 배흘림기둥으로 중간이 두껍고 아래와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모양이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인 공포를 기둥 위에만 짜서 올린 주심포 양식으로 전체적으로 간결한 인상을 준다. 무량수전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량수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고려 시대 사찰 건축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전각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Stone Lantern at Muryangsujeon Hall of Buseoksa Temple, Yeongju
석등은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돌로 만든 등으로 광평등이라고도 한다. 보통 대웅전이나 탑 앞에 석등을 세운다. 석등은 볼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받침돌이 있고 위에는 위에는 지봉돌과 머리 장식이 얹혀 있는 구조이다.
무량수전 앞 석동은 맨 아래에 네모난 바닥들이 있고 그 위에 3단의 반침들, 화사석, 지붕들이 차례로 놓여있는 모습이다. 바닥들의 옆면에는 꽃 모양의 장식을 새겼다. 바닥돌 위에 있는 아래받침들에는 큼직한 8개의 연꽃잎을 표현하였다. 아래받침돌 위에 놓인 팔각기둥 받침들은 굵기와 높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비례를 보인다. 팔각기둥 위에 있는 윗받침들에는 부드러운 연꽃잎 8개를 새겼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만들었고 창이 없는 나머지 4개 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돌 역시 8각이며 모서리 끝이 살짝 들려 있는 모습이다. 지봉돌 위에는 머리 장식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석등 앞에는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향로를 놓았던 배례석이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석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석등 중 하나로서 각 부분의 정교한 조각 솜씨와 전체적인 비례감이 매우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화려한듯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의 석조 예술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석등이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Clay Seated Buddha of Buseoksa Temple, Yeongju
소조여래좌상은 나무로 앉아 있는 모습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붙여가면서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불상은 높이 2.78m의 크기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부처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진리의 빛을 표현한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나무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얼굴은 풍만하고 두꺼운 입술과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손모양은 무릎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향마촉지인인데, 이러한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소조여래좌상이 있는 전각 이름이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파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수전이라는 점과 부석사 '원융국사비'에 "좌우에 다른 보처 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다른 사찰의 불상과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모셔져 있고 시선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대해서는 아미타여래가 서방정토에 계시기 때문에 서쪽에 모셨다는 설,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 유사한 느낌의 공간감을 만들고자 의도했다는 설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불상이며, 웅장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어순력 가치도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탑은 원래 석가모니의 유골인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을 말한다.
한국의 석탑은 보통 바닥들의 기단부, 몸돌과 지붕들의 탑신부, 머리장식인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2단의 바닥들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이다.
기단부의 바닥들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부의 몸돌은 각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 위에 놓인 지붕들은 밑면 받침을 5단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륜부의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1956년에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였고, 석탑의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이때 사리를 넣어 봉안하는 공간인 사리공을 확인하였으나, 사리기는 없었다. 다만 기단부에서 소형 철제탑, 불상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탑은 법당 앞쪽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석탑은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위치해 있어 이채롭다.
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사진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눈으로 담았던 그 산자락과 부석사 건물들이 "와... 와..." 감탄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힘들 것 같은 이 산에 옛날에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부석]
Buseok Rock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대사는 깨달음을 얻고자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마음을 두었다. 의상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나타나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래서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 이름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영원토록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돌아래 깃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삼층석탑에서 소원 빌며 세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불상 앞에서 또 간절히 기도했다.
뒤돌아 서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우당탕탕탕-탕! 탕 타라 탕탕~ (진짜 소리 컸음)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산사태인가? 뛰어내려 가야 하나? 누가 불상 위에 올라가서 무너졌나?"
생각하며 뒤돌아보니 우측 산자락에서 큰 나무가 부러지면서 흙과 함께 굴러 내려온 것 같았다.
뭐지..
내 기도에 답하신 건가? 오늘도 긍정적으로 짜 맞추기 ㅋㅋㅋ...
마지막으로 관음전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나는 이 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돌길을 걸으며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바라보는데 풀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길
둘러보고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기다릴 수 없어 맞으며 내려갔다.
울창한 나무숲 덕분에 우산 삼아 내려올 수 있었다 :-) 이것도 추억이 될 거라며..ㅋㅋ
괜히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가, 우리나라에서 최고 목조건물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몇 년 전 왔을 때와는 다르게 부석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오니 확실히 눈에 더 많이 담겼다.
(아직도 알아가야 할 역사가 많지만...)
높은 산을 오르지 않았음에도 부석사에서 내려다보이는 자연경관이 눈을 정화시켜 준다.
봄엔 꽃, 여름엔 울창한 나무그늘, 가을엔 붉게 물들어 있을 단풍, 겨울엔 눈 내린 사찰..
사계절 각각의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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